프란츠 카프카 <변신> - 사회가 규정해버린 가장이라는 역할 텍스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많은 서평을 읽어보니 대부분 인간소외와 산업화로 인한 이기적 인간관계,고립, 이기심에대해 열거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와 뜻을 같이하지만, 나는 좀 다른식에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레고르의 해충으로써의 변신은 사회적 위치에 책임과 압박속에서 한 인간의 반사회적 무의식이라고 말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자신이 해충화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판원으로써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는, 가족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자신의 방에서 방치되기 시작한다.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가족들은 고민 끝에 절약과 취업을 통해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다보니 한집안에 가장이였던 그레고르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라는 내용이다. 독자들은 보통, 가족들을 비난하고 나선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가장이였던 그레고르를 해충으로 변했다는 이유로 격리시키고, 공격하며 마지막에 '버리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정말 방안에 거대한 해충을 동정하고 계속해서 감수 해내려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단지 과거에는 가족이었다 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그레고르 가족은 몇달동안 해충에게 (그레고르) 식량을 주었으며, 그가 방안을 나오지 않는 한 해코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종종 방에서 나와 주위사람들을 놀래키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기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가족이 그 해충을 감당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가족중 누군가의 '장애, 식물인간, 정신병'으로 '해충이 된 그레고르'를 접목시켜보았다. 가족중 누가 '장애,식물인간,정신병이있었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보내주고 간호하였을것이다. 그런데 벌레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일반 벌레도 아니다, 거대하고, 흉칙한 해충인것이다. (돌아다니면서 점액도 흘리고 다닌다!)(병이라면 조치를 취하고 희망을 가질수 있다!) 무엇을 이 해충과 접목시킬 수 있을까? 적어도 그레고르가 외형만이라도 그대로였다면, 이정도로 배척당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엔 이런 해충이 된것은 본인의 무의식이 투영된것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왜냐하면 그레고르는 자신이 해충화되었을때 놀래기보다는 감기라도 걸린듯이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가족들을 안쓰럽게 여긴다. 천식이신 어머니, 비만이신 아버지, 곱게만 자라온 누이동생, 그리고 부모님의 빚.

그런 가족의 짐을 혼자 지고 가던 가장 그레고르는, 어쩌면 그래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해충이 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없는 집이 망해가는 모습을 보는것을 말이다. 처음 그레고르의 급여를 가족들에게 제공하였을때 감사를 표하던 가족들은 나중엔 그레고르가 벌어오는 수입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그런 허탈감과 사회가 주장하고 압박하는 가장이라는 위치, 역할 속에서 그레고르가 할수있었던 가장 멋진 반항은 어쩌면 해충이 되어 자유롭게 천장을 기어다니는 것이 었을지도 모르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